잠의 기능 8가지

잠의 기능 8가지


우리가 자는 잠은 눈이 감기고 대부분의 의식 활동이 정지되는 상태로 거의 모든 척추동물은 이 잠을 자며, 이 때 맥박과 호흡 등 생명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활동을 제외한 모든 신체 활동이 휴면에 들어가고 무방비한 상태가 됩니다.

잠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활동으로 많은 기능도 하는데 거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경험 및 감정 등의 외부 정보 정리

일상에서 겪은 일 중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분류하여 장기 기억으로 전환시키거나 지워버리는 과정입니다. 물론 장기 기억이나 망각은 깨어있을 때도 작동하지만 잠을 자는 동안 더 확실히 정리한다고 보면 됩니다. 마치 오전 내내 정신없이 보낸 후 여유로운 점심시간에 커피 마시고 쉬면서 오전의 일들을 되돌아보며 정리하는 과정이라 보면 됩니다.

뉴욕의 신경정신학자인 가야트리 데비 박사는 “뇌는 빛의 속도로 정보를 평가하고 분류하며, 필요 없는 내용은 지워버린다”고 설명했는데, 이것저것 하느라 바쁜 시간보다는 가만히 있는 시간, 특히 자는 시간에 그 기능이 가장 활성화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는 기억을 가진 경우 새로운 내용을 습득하지 못하거나 현재 상황에 집중하지 못하는 장애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실연 당하거나 시험에 불합격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적인 일로 너무 괴롭고 아무 일도 못 할 것 같을 때 차라리 한숨 푹 자고나면 마음이 진정되고 감정이 추스려지기도 하는 것처럼, 잠을 자는 동안 괴로운 기억들이 일부 잊히고 마음이 정리된다고 합니다.

기존에는 뇌에 가해지는 부하를 풀기 위한 생리현상이라는 설이 대세였으나 2017년 뇌없는 해파리도 잠을 잔다는 사실이 밝혀져 뇌의 휴식을 위해 수면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의 휴식을 위해 잠을 자는 과정에서 뇌도 회복되는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해파리 관찰 결과 촉수를 우산처럼 펼치거나 닫는 동작을 밤에는 약 30% 적게 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복싱도 라운드마다 휴식 시간을 주며 축구도 전후반이 나누어져 있는데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피로 해소가 된다고 합니다. 실제 의사들은 불면증 환자들에게 잠이 안 온다고 다른 거 하지 말고 그냥 눈 감고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일정 부분 잠을 자는 효과가 있으니 그렇게라도 하라고 권합니다.


뇌 속의 노폐물 제거

미국 학자들이 수면 상태인 쥐의 뇌를 연구한 결과, 잠을 자는 동안 뇌세포 사이의 공간이 넓어지며 뇌 안에 쌓인 독소를 제거한다는 사실을 밝혀내어 논문으로 냈는데, 해당 논문은 2013년에 과학지 '사이언스'에서 10대 연구 성과 중 하나로 선정되었습니다. 잠을 잘 때 뇌 안을 물청소를 하듯 뇌척수액으로 뇌에 쌓인 아데노신을 비롯한 노폐물을 씻어낸 뒤 간으로 보내서 정화작용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019년에는 인간을 대상으로 유사한 연구가 실시되었다. 인간도 비REM 수면 중에 뇌척수액이 뇌세포 내 베타 아밀로이드를 비롯한 독소(노폐물)를 청소함이 증명되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뇌 청소를 왜 잠을 자는 동안에만 하는지도 밝혀냈습니다. 일단 잠이 들면 뇌의 뉴런들이 순차적으로 활동을 정지하고, 활동이 정지된 뉴런은 많은 산소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혈액 공급이 차단됩니다. 그리고 혈액이 빠져나간 자리에 뇌척수액을 들여보내 노폐물을 청소합니다. 여담으로 수면 중 청소되는 노폐물인 베타 아밀로이드는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물질 중 하나로, 충분한 수면이 치매 예방에 필수적임이 입증된 셈입니다. 실제로 이 장면이 관찰된 것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신체활동의 중지를 통한 피로 해소

가장 명확하게 밝혀진 잠의 기능입니다. 동물의 신체는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소비하면 그 기능이 떨어지는데, 이를 피로라고 합니다. 그러나 잠을 자는 동안에는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기관을 제외하고는 신체가 일을 쉴 수 있습니다. 아이들도 잠을 충분히 자지 않으면 피로하고 잠을 푹 자면 피로가 풀린다는 사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나 인체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기관인 뇌를 쉬게 함으로써 활기를 불어넣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발목을 다쳤을 때는 무조건 안정을 취해야 하지만 통증이 없으면 보통 활동을 계속하게 되기에 손상이 가속됩니다. 이때 통증으로 인해 강제로라도 발목을 신경 쓰고 조심히 사용하면 경미한 손상은 가만히 안정만 취해도 자연 치유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에 피로가 쌓여서 기능이 떨어지면 강제로 수면제를 투여하여 안정을 취하게 시키는 것이라 보면 됩니다. 사실 그럼에도 각성제 등을 써가면서 무리하게 잠을 쫓으며 안 자려는 사람들이 넘쳐나므로 잠이 없다면 정말 여기저기 돌연사가 빈번하게 벌어질 것입니다. 박카스, 레드불 같은 각성제는 진통제 수준의 임시방편일 뿐이고, 잠이야말로 근본적인 천혜의 피로 해소제 입니다.


호르몬 주기설

육체의 성장 및 복구에 관련된 호르몬은 운동 능력 등을 떨어뜨리는데 이걸 주기로 나눠서 깨어 있을 때는 활발하게 움직이고 잠들었을 때는 기상 후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다는 이론입니다. 신체적 비활성기 동안 호르몬이 분비되는 것이 잠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학설도 있습니다. 뇌 신경 휴식설과 호르몬 주기설은 반대되는 개념은 아니고 양립하고 있기에 둘을 합쳐, 정보 처리가 한계에 다다라 효율이 떨어지면 이를 복구하기 위해 호르몬이 분비되고, 이에 따라 잠이 온다는 설도 가능합니다.

호르몬은 가변적이라는 점에서 원인이 아니라 결과란 해석도 있습니다. 12시에 수면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에 12시에 자는 게 아니라, 내 생체리듬이 12시에 자는 것이므로 분비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원시시대에는 깜깜한 밤에는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지구의 낮과 밤 주기에 맞춰 밤에는 안 움직이고 휴식을 취하다 보니, 최대한 휴식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최적화되어 진화했다는 것입니다. 즉 호르몬의 주기에 맞춰 잠을 자는 게 아니라, 밤에 휴식을 취하는 인간의 주기에 맞춰 호르몬이 분비된다는 것입니다.


신체의 회복 및 고통 완화

특정 상황에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완화하는 역할도 합니다. 만약 사고, 외과 수술 등으로 엄청난 외상이나 정신적 충격을 당했을 때 잠이라는 것이 없다면 정말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때문에 의사들은 생사가 오가는 상황의 중환자에게는 다량의 수면제를 투여해서 환자를 며칠씩 계속 자게 함으로써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고 쇼크를 방지하고자 합니다. 일례로, 교통사고로 기절하여 실려 간 환자들을 보면 한동안은 계속 잠만 자려고 합니다. 일단 깨우면 일어나긴 하고 몇 마디 대화도 가능한데 금방 다시 잠듭니다. 이것을 봐도 잠이란 것은 손상된 몸을 자동 복구하는 과정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몽사몽으로 며칠 간 잠만 자던 환자가 어느 순간 딱 제대로 의식을 차리게 되는데, 그때 쯤 되면 처음 병원에 실려 왔을 때보다는 몸이 많이 회복된 후입니다.


꿈을 통한 욕구 해소의 장

꿈은 억눌러왔던 욕구를 해소시켜주는 기능을 합니다. 간절히 바라던 상황이 꿈에서 이루어져 행복을 만끽하기도 하고, 군대 꿈의 경우 과거 군대 상황을 '불러오기'하여 고참에게 통쾌하게 복수하거나 또 얼차려 받는 등 다양한 감정을 배출해 내는 판을 깔아줍니다. 화병 전문가들은 울고 싶을 때 억지로 참다 보면 결국 화병 걸린다며 펑펑 우는 것도 화병의 치료법이라고 하는데, 꿈을 통해 평소 억눌러왔던 분노, 슬픔 등의 감정을 토해냅니다. 꿈에서 죽은 연인이나 반려견을 만나 감정이 복받쳐 울다가 깨어나는 경우처럼 말입니다. 


꿈을 통한 명상 및 시뮬레이션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은 아찔한 꿈을 꾼 뒤 교훈을 얻어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외 애인이 바람 피우거나 죽는 꿈을 꾸며 울고불고 난리 치다가 꿈에서 깬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애인에게 새삼 잘해주는 경우도 있는데, 잃어봐야 소중함을 안다는 교훈을 꿈을 통해 경험해 본 것입니다. 또한 이미지 트레이닝처럼 꿈을 통해 수험생이 시험장에 가서 시험 보는 체험을 해본 후에 교훈을 얻기도 하고, 그동안 간과해왔거나 놓쳐왔던 부분을 인식하여 새로운 깨달음도 얻을 수 있습니다. 


기억의 긍정적 편향 유도

잠을 잘 자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행복하다고 합니다. 이는 잠이 직접적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고, 기억을 긍정적으로 편향시켜 행복하게 느끼도록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연구 결과 잠을 충분히 잔 사람에 비해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기억에 비해 부정적인 기억을 더 잘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기억의 긍정적인 편향은 사람을 더 행복하게 느끼도록 매개해 줍니다.

이상으로 잠의 기능 8가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이전